공개수다

동생 시집가던 날

바람 행짱 2004. 11. 25. 18:27

지난 토요일, 우리 집 막내가 결혼식을 올렸다.
딸 셋 중 결혼에 무관심한 첫째인 나를 살짝 돌아 둘째가 결혼한지 8년만에 막내가 결혼한 것이다.
나이 서른을 넘기도록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다가 작년 좋은 인연을 만나 일 년 여를 사귀다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혼에 관심 없는 나 때문에 마음 많이 끓이시던 엄마는 막내마저도 나와 같을까 봐 노심초사하셨었다.
그런데 인생에 운명의 사람은 있나 보다.
서로 인연이 닿으려니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지고 중국과 서울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랑은 쌓여 갔다.

 

막내는 결혼 후 한 동안 중국에 가서 살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얼마 앞두지 않고는 녀석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자꾸 맺혔다.
아쉬울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찾던 녀석인데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헛헛해졌다.
게다가 결혼 생활도 낯설텐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가서 살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테니 막내라고 어리게만 보던 녀석의 얼굴을 보자면 안쓰러운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혼 날짜가 다가오면서 식장에서 눈물 보이지 말자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결혼 전 날 엄마와 막내, 나는 나란히 셋이 누웠다.
새벽이 가까워지도록 잠에 들지 못하고 우린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순간 막내가 울기 시작했고, 나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때 내가 제안했다.
"우리 예식장에서 울지 말자. 우는 사람 10만 원 벌금내기."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다.
"좋은 날에 왜 우니? 난 절대 안 운다. 그래 벌금내기 하자."
"언니 나도 포함되는 거야? 나는 빼면 안돼? 나 지금 결혼한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눈물이 나."
"안돼. 신부가 웃어야지 울면 잔치 분위기 다 망쳐. 너도 포함이야."
그래서 우리의 벌금내기는 성립되었다.

 

결혼식 날, 걱정과는 달리 우리 식구들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이 날의 화신이었던 우리 막내는 너무도 멋진 신부였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답게 자신이 디자인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베일을 쓴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엄마, 아빠는 고마운 마음으로 하객들을 맞았고, 나도 찾아주신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두 꼬마 조카 녀석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귀여운 재롱으로 하객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막내를 보내는 의식을 치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식구들 맞이하는 신나는 찬치를 치른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멋진 잔치를 치룬 만큼 새로 한 가정을 이룬 막내 내외가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