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
부모님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시고,
자식은 그래도 그 중 더 아픈 손가락이 있지 않냐고 한다.
선생님은 모두가 사랑스러운 제자라고 하시고,
제자들은 선생님의 눈길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머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편애.
치우친 사랑.
누구나 편애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경험일 수도 있고,
부족한 사랑을 받은 경험일 수도 있다.
나 또한 편애를 경험했다.
부모님은 특별히 첫째인 나를 사랑하셨기에 동생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겁이 많아 모범생일 수 밖에 없었기에 선생님에게서도 특별한 아낌을 많이 받으며 자라났다.
그리고 내가 사랑을 주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내 사랑을 받는 이들로부터 당신 지금 편애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게 두려웠지만
나 또한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어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더 예쁜 녀석이 있게 마련이고,
사무실에서 부하직원들과 일을 하면서도 더 예쁜 녀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편애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조합일 뿐이다.
예쁜 짓을 하니 예뻐보이는 것, 그래서 예쁘다고 말해 주는 것.
그러니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에 가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편애라고 한다면
주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편애라는 화두를 꺼낸 것은 무조건 예뻐하는 것,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 나는 편애라는 단어를 하루 종일 머리 속에 담고 살았다.
그 단어가 머리 속을 콕콕 쑤셔 아프더니 지금은 에라 모르겠다만 남았다.
될데로 되라지 뭐.
모든 일은 항상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니까.
그런데 편애를 하는 사람과 편애를 받는 사람, 둘 중 누가 마음이 불편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