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점의 정체
내 몸엔 유난히 빨간 점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있던 점들은 조금씩 커지고, 나이가 들수록 빨간 점의 개수는 많아지고 있다.
마치 피가 맺혀 있는듯 선명하게 붉은 이 점들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왜 이런 점이 생기는지 궁금했었다.
대학 시절, 어느날 친구 녀석 하나가 아침에 오더니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내 동생이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점 봐주는 할아버지에게 점을 봤대.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내 동생 팔에 있는 빨간 점을 보더니 '숫처녀구만' 하더래.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빨간 점은 숫처녀에게만 있는 점이야'라고 하더래."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너도 나도 몸에 있는 빨간 점을 보이며 신기해 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내 팔에 있는 빨간 점을 엄마에게 보이며 낮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내 말을 다 듣고 엄마는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팔을 쭉 내밀며 빨간 점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야, 봐라. 나도 빨간 점이 있으니 숫처녀니? 어디서 엉터리 점쟁이 말을 듣고서 호들갑은."
이렇게 빨간 점의 정체는 또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불과 며칠 전.
집에 온 동생이 내 팔에 있는 빨간 점을 보더니 문득 생각난듯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언니도 빨간 점이 많이 생겼네. 우리 동네 어떤 아줌마가 열심히 피부를 가꾸는데 요즘 들어 자꾸 빨간 점이 생기더래. 그래서 피부과에 가서 의사에게 물었더니 '노화예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더래."
아, 그거였구나.
빨간 점의 정체는 노화의 증거였구나.
동생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노화의 증거를 몸에 잔뜩 있는데도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든지.
20여 년만에 밝혀진 빨간 점의 정체가 오래간만에 나를 박장대소하게 하였다.
나이가 들고 노화가 진행되도 좋으니 작은 일이라도 매일 이렇게 크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