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사람이 아까워서 어쩌나...

바람 행짱 2008. 9. 7. 22:08

어제였다.

아침 일찍 교과서 저자에게 전화가 왔다.

"안 좋은 소식이예요. ○○○선생이 죽었다는구만."

"네? 갑자기 왜요?"

"잘은 모르겠는데 암이었나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제 서른두 살인데, 사람이 아까워서 어떻해요?"

그리고는 침묵.

전화를 거신 분이나 나나 말을 더 잇기 힘들었다.

얼마 전부터 몸이 안 좋아 회의에 참석 못 하긴 했지만 이런 부음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생에서의 짧은 시간을 마감하고 떠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서야 ○○○선생의 삶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암 진단은 받은 것은 작년이라고 했다.

병가를 냈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그게 암 치료를 위한 것인지는 몰랐었다.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수술과 항암 치료의 힘든 시간을 이겨낸 후 완치되었다고 생각했었단다.

올 봄 내가 교과서 작업을 같이 하자고 전화했을 때,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이틀 후 전화해서 너무 하고 싶었던 작업이었다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러 온 날, 다른 때와 다른 숏커트 머리 스타일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더니 그게 항암 치료 뒤여서였나 보다.

집필과 회의 작업이 시작된 후 ○○○선생이 보여준 열정은 남달랐다.

마라톤 회의에 힘들어 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그래도 큰 병을 앓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작업이 진행되던 도중 검사 받을 게 있다며 몇 번 회의에 빠졌었다.

그러다 다시 회의에 참석한 ○○○선생은 가발을 쓰고 있었다.

머리 스타일이 또 바뀐 것 같다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긴머리 하고 싶어서 머리를 붙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재발된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강한 약을 썼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고인이 된 ○○○선생의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본인의 남은 생을 알고 이생에서의 마지막 일로 교과서 작업을 선택한 것 같다고.

힘들어 하면서도 재밌어 했고, 회의에 다녀오면 있었던 이야기를 옮기느라 말이 많아졌었다고 했다.

병원에 누워서도 마지막까지 원고를 다듬었고, 혼수상태에서도 틀린 수학 문제 수정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했다고도 했다.

 

고인의 영정을 보며 이러저러한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까지 열정을 보여준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기도 하고, 사람이 아까워 안타깝기도 하고, 마지막 인사를 영정을 마주 대하고서야 하게 된 것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러나 모든 생각을 뒤로 하고, 이제 ○○○선생에게 새로운 몫이 주어진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이라는 이름 석자로 살아왔던 인생이 아닌 새로운 몫이.

그래서 영정을 보며 흘렸던 눈물을 닦았다.

새로운 몫을 위해 떠나는 사람에게 눈물의 배웅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선생, 당신의 반달눈 웃음은 영원히 잊지 못할거예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