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고..

바람 행짱 2009. 3. 4. 00:56

오늘 아침, 언제나 딸내미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아침 밥을 챙겨주시는 엄마가 기척이 없었다.

아침 차려달라고 깨우는 것이 죄송하여 밥이 있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밥통을 열어봤더니 밥이 없었다.

아침밥을 건너뛰면 회사에 출근할 기운조차 없는 내가 그 순간 선택한 것은 라면을 끓여 먹고 가자는 것이었다.

아침 시간에 김치와 계란까지 넣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참 나도 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밥 없다고 라면 끓여 먹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렇게 아침으로 라면을 먹었던 옛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서른 살,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결혼 준비로 바쁘셨던 엄마는 아침밥이 없다는 것을 깜박하셨고 아침밥을 찾는 나 때문에 당황하셨다.

"엄마, 나 라면 끓여 줘."

"아침부터 라면 먹어서 어쩌니?"

그래도 워낙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엄마가 급하게 끓여주신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끼 정도 안 먹고 출근할 수도 있는데 밥 없다고 라면을 먹고 있는 나란 사람이 참 우스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침 밥 없다고 라면 끓여 먹는 사람은 세상에 나 밖에 없을거야."

일하다 내 말을 들으신 엄마가 화를 버럭 내셨다.

"내가 오늘 말고 언제 너 아침에 라면 끓여 먹인 일 있니? 매일 새벽 밥 해먹였더니 하루 라면 먹는다고 투정이야?"

갑작스런 엄마의 반응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엄마, 그런 뜻이 아니잖아. 나는 그냥 한 끼쯤 안 먹어도 되는데 이렇게까지 아침 챙겨 먹는 내가 웃겨서 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엄마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큰 딸 두고 둘째 딸 시집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마냥 좋아하지도 못 하면서 애잔함이 있었던 것이다.

결혼 생각 없다고 갈 녀석부터 보내라고 말하는 큰 딸의 말이 고지곧대로 들리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큰 딸의 눈치를 보던 차에 아침 밥으로 인한 작은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때 이후 아침 출근 전에 라면을 끓여 먹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 후 십삼 년 동안 엄마는 예전과 다름 없이 언제나 새벽 밥을 해 주셨고, 나는 하루 세 끼 중 가장 근사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엄마의 밥상을 받고 산다는 것은 분명 불효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엄마는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해. 나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도 하고 할 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내가 엄마를 위해서 아침 꼭 챙겨먹는 거야."

나는 정말 나쁜 딸이다.

하지만 이게 내가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착한 우리 엄마는 너무도 잘 알아주신다.

"엄마, 내일 아침은 맛있는 밥 꼭 차려 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