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비가 내리는 날에...

바람 행짱 2009. 4. 25. 17:10

어제 오늘 계속 비가 내렸다.

엊그제 교과서 합격 발표 후라 내리는 비가 가슴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5종 모두 합격 했지만 그 합격이 중학교 교과서 1종 탈락에 묻혀 축하의 말들이 마음에 남지 않고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고생했던 부하 직원들은 내 눈치 보느라 눈동자만 굴리며 숨죽이고 있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사장님은 그래도 수고했다고, 그동안 너무 잘 되 와서 한번쯤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위로해 주시고.

하지만 이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단순히 탈락만으로 끝나지 않을 앞으로의 일들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지...

 

마음이 불편한 날은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술을 마셨다.

내 의지는 아니였고, 축하 겸 격려를 위해 사장님이 제안하신 자리였다.

요즘 위 상태가 안 좋아 술을 마시면 힘들거라는 걸 알면서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들 내 눈치를 보고 있어서 내가 분위기를 띄우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자리가 불편할테니까.

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정말 많이 마셨다.

그리고 취했다.

취하니 부하 직원들 생각이 났고, 탈락의 아픔보다 합격의 기쁨을 더 느꼈어야 할 그들에게 제대로 수고했단 말도 하지 못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눈물이 났다.

그래서 핑곗김에 실컷 울었다.

술 때문인지 감정 조절이 힘들었고, 애써 기분을 숨기기도 싫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 마신 날 아침, 나는 또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까칠한 얼굴과 퉁퉁 부은 눈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술병을 다스리며 하루를 보낸다는 건 참 지독한 일이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싸늘한 날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속을 비우는 과정을 되풀이 해야 하는 일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이런 날,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혹시라도 내가 기운을 잃을까 걱정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신 사장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오버하는 내 마음을 읽고 가만히 어깨를 감싸 안아준 사람들,

연락도 없이 늦는 딸내미 걱정에 잠 못 주무시고 기다리신 우리 엄마,

술병 났다고 약을 챙겨준 사람들,

밥 못 먹는다고 음료수를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사람들,

속상한 맘 더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준 사람들,

애정 담긴 문자를 보내준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나는 내가 귀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도 창 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시간이 있음을.

그 시간들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