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회상

편지 왔습니다.

바람 행짱 2009. 5. 17. 01:14

느지막이 퇴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여신다.

"오늘 C에게 전화 왔니? 아까 네 핸드폰 번호 물어봐서 가르쳐 줬는데."

"아니, 그 아이가 왜?"

"그동안 너무 연락을 안 하고 산 것 같다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던데."

"전화 안 왔는데. 새삼스럽게 궁금하기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C의 이름을 듣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C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들의 모임에 어찌 하다 같은 반이 아니었음에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C는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였다.

이성이었지만 여자 남자를 떠나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고, C 또한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C가 내게 특별한 친구된 것은 대학 시절 서로 주고 받았던 학보와 편지 때문이다.

서로 다른 학교에 다녔던 우리는 학기 중에는 매주 짧은 글을 써서 학보를 주고 받았고, 방학이 되면 편지를 주고 받았다.

C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 친구였다.

어느 해 여름 방학이었다.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C였다.

"방금 자전거 타고 와서 편지 배달하고 집에 가는 길이야. 우체통 열어 봐."

"여기까지 왔으면 들어왔다 가지. 왜 그냥 가?"

"오늘은 편지 배달하러 간거니까."

전화를 끊고 나가 우체통을 열어 보니 편지 쓴 사람이 직접 배달한 따뜻한 편지가 들어 있었다.

그 외에도 타자기로 콩콩 찍어서 보내주었던 편지, 여행을 떠나 여행지를 옮겨다닐 때마다 느낀 소회를 간단하게 써서 보내준 엽서도 내겐 따뜻한 선물이었다.

이쯤 되면 모르는 사람은 너희 둘 사귄거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 시간 동안 나는 C를 단 한 번도 남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C의 편지를 읽어도 나를 여자로 생각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우리의 편지에는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는 친구로서의 동지애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우리 사이의 편지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C가 연애와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끊어졌다.

편지가 끊어졌을 때 섭섭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인터넷이 대중화 되고 이메일이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면서 나는 가끔씩 C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때를 떠올리곤 했다.

종이에 마음을 빼곡히 써서 봉투에 담아 보내던 젊은 날의 낭만이 그리웠던 것일게다.

 

오래간만에 온 C의 전화가 궁금했는지 아버지까지 내게 알은 체를 하신다.

"C가 왜 전화 한 거야?"

"아직 저한테는 전화 안 왔어요."

"왜 전화 했을까?"

"뻔하죠 뭐. 늙어서에요. 나이 드니까 젊었을 때가 그리운거죠 뭐."

나는 믿는다.

C도 나처럼 가끔은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젊은 날의 낭만을 그리워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