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회상

내 자신이 가장 기특했을 때

바람 행짱 2009. 8. 16. 02:39

며칠 전 회식 자리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듣다가 어린 시절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 서두에 '내가 나 자신을 가장 기특하게 생각했었던'이라는 단서를 붙였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내 자신이 기특해서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누군가(흐릿한 기억으로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에게 벽지에 있는 학교 학생들은 읽고 싶어도 책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마음에 내 방 책장에는 좋아하는 책이 잔뜩 꽂혀 있어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읽을 수 있는데, 그 친구들은 책이 없다니 얼마나 책을 읽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그 친구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방법이 문제였다.

애지중지 아끼는 내 책을 보내줄 수는 없고, 좋은 방법이 없나를 고민하다가 결국 책을 사서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초등학생이라 가진 돈이 없으니 책을 사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그때 어디 가서 일을 할 수도 없으니 돈을 벌 방법이 무엇을까를 고심하다가 넝마를 모으러 다니는 아저씨를 보고 빈병을 모아서 팔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를 돌면서 빈병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빈병을 모으자니 한계가 있었고, 모은 병을 고물상에 팔러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한 명 두 명 나와 함께 빈병 모으기에 동참했다.

십시일반이라고 사람이 많으니 빈병도 많이 모이고 돈도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지만 선물할 책을 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시 더 많은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길거리에 있는 호떡집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종이 봉투를 만들어서 호떡집에 팔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당시의 봉투는 잡지나 신문지를 밀가루 풀로 붙여서 만든 것이여서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의사인 친구네 병원에서 과월호 잡지를 얻고, 각자 집에서 신문지도 가져와서 봉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엉성했던 봉투가 조금씩 제법 모양을 갖추면서 봉투 만드는 요령도 생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봉투가 어느 정도 되자 봉투를 팔아야 했고, 나는 처음 아이디어를 얻었던 호떡집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가 만든 봉투를 사주십사 부탁했다.

어린 녀석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아주머니는 흔쾌히 봉투를 사 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는 빈병을 모으고 또 하루는 봉투를 붙이면서 돈을 모았고, 어느 정도 모였을 때 담임 선생님께 지금까지의 일을 말씀드렸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그동안 모은 돈으로 책을 구입하고 친구분이 교사로 재직 중이던 충남의 한 학교에 책을 보내주셨다.

그때 우리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31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양동이를 들고 빈병을 모으러 다니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봉투를 붙이던 마냥 해맑고 예뻤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때처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그때 그 마음을 다시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믿기에, 나에게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여행 중에 시골 작은 분교의 울창한 소나무에 이끌려 들어갔다.

이 나무들은 아이들과 꿈과 함께 자랐고 또 자라겠지?

문득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