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다짐
아주 오래 전,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남자 반 수업을 끝내고 교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뒤에서 아이들 함성이 들렸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녀석이 바닥에서 슬라이딩을 하며 치마를 입은 내 다리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녀석 머리를 발로 뻥 차고 말았다.
내 발차기와 동시에 교실엔 웃음소리가 가득 찼고, 내 발에 머리를 차인 녀석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싱겁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 반 녀석들 전체가 작전을 짜고, 그 중 한 녀석이 임무를 수행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나는 임무를 맡은 녀석을 교무실로 데리고 가 야단을 친 후 열흘 동안 매일 반성문을 한 통씩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다음 날, 녀석이 첫 번째 반성문을 써서 가지고 왔는데 반성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반성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에는 선생님 탓도 있습니다. 왜 치마를 입고 오셨습니까? 치마를 입고 오셔서 치마 안을 보고 싶게 한 것은 선생님 잘못입니다."
이 반성문을 읽고 처음에는 어이 없어 하다가, 한편으로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해서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녀석을 불러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나머지 반성문은 쓰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자기를 합리화하는 아이에게 더 이상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나는 일기에 반성문을 썼다.
삶에 대한 내 태도와 사람들을 대하는 내 태도 그리고 나 자신을 대하는 내 태도에 대해 반성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성문을 쭉 써나가면서 나 또한 예전에 그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성을 하겠다고 시작한 글이 어느새 나를 합리화하는 글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쓴웃음을 거두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다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짐해 본다.
하늘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삶을 살겠다고.
꽃은 하늘을 향해 웃는다.
나도 꽃처럼 하늘을 향해 웃는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