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릿 지음 / 김명남 옮김 / 창비 2015
나는 세 자매 중 첫째다.
우리 아버지는 대를 이을 의무가 있다는 장남이지만,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결국 아들을 얻지 못 했다.
우리 집이 세 자매가 된 것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시아버지의 눈칫밥을 견디지 못한 엄마의 한 번만 더 때문이었다.
집에서 산파를 불러 낳은 셋째가 딸인 걸 알고 엉엉 울던 엄마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사랑이 작지는 않았지만 저게 뭐 하나 달고 나왔어야 하는데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엔 딸과 아들의 차이점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9살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들을 낳지 못한 꾸중의 글을 우연히 보고는 어린 마음에 굳게 결심했다.
"그래, 나는 아들이 되어야 해."
그렇게 결심한 후 땋고 다니던 머리를 잘랐고, 중학교에 진학하여 교복을 입을 때까지 치마를 입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왜 어른들이 그렇게 아들 아들 하는지를 알게 됐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존재이며 두 존재 사이에 높낮이가 있다는 사실이 어디서 건 언제이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입력됐다.
어린 시절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어느 순간 남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머리를 자르고 치마를 입지 않는 것으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였다.
결국 남자가 되려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남자를 이기는 여자가 되려고 나는 마녀가 되었다.
아들이 되겠다고 생각한 학창 시절과 남자가 되겠다고 행동한 사회생활을 보내서인지 남자들을 대하는 내 태도는 당당하다.
남자보다 약한 면도 있지만 강한 면이 더 많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원론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가르치려 한 남자들과 맞짱 뜨며 마녀가 되었기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 나와 함께 일하는 팀장 15명과 점심 식사를 했다.
출판사 개발본부라는 특성 때문에 남자는 그중 3명에 불과했고, 그들은 말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묵묵히 밥 먹는 모습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 남자들을 보다 큰 소리로 말했다.
"여자 분들, 우리 남자들에게 잘해 줍시다. 기를 세워 줍시다."
어쩌면 나는 나를 가르치려 드는 기센 남자가 존재하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나를 가르치려 들었던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