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아빠의 사랑은 반짝 반짝

바람 행짱 2005. 6. 9. 20:23

얼마 전 우리 아파트 단지에 도둑이 들었다.
그 도둑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밤이 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을 택해서 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 도둑은 하루 밤 동안 몇 채를 털었고, 다음 날 아파트 단지가 이 일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복도식 아파트이다 보니 경비실에 사람이 있어도 이런 좀도둑까지 모두 잡아낼 수는 없고, 그러니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커질 수 밖에.
우리 집은 늘 문을 열어두고 사는데 이 때부터 엄마는 초저녁이면 문단속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던 중 엄마 아빠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면 나는 항상 귀가가 늦으니 집이 하루 종일 비어있을 수 밖에 없다.
아빠는 혹시나 아무도 없는 집에 도둑이 드는 것도 걱정되고, 깜깜한 집에 딸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집을 비우기 전날 전구 하나에 타이머를 달아서 자동으로 오후 7시면 불이 켜지고 자정이 되면 커지도록 장치를 해 두셨다.
이렇게 해 두면 밖에서 보면 우리 집에 사람이 있는 줄 알 것이고, 나도 깜깜한 집에 안 들어와도 되니 안심이라고 하시면서.
엄마 아빠의 집을 비우신 첫 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서 우리 집을 올려다 보니 아빠의 사랑이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사랑의 불빛을 보고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왔다.

 

휴일이던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집안에서 들렸다.
잠에 취해 내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 나가 보니 그 대화는 안방 TV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어제 밤에 분명히 문단속하고 모든 전원을 다 끄고 잤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추리를 해 보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 그거. 아빠가 그렇게 해 놓으신거야. 불빛만 새어나오면 뭐하냐고, 사람 말소리가 들려야 된다고 하시면서. 아침에 켜졌다가 밤 10시에 자동으로 꺼져.'
산지 10년 가까이 된 고물 TV에, 그 동안 단 한번도 자동 온오프 기능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었고, 매뉴얼도 없구만 어떻게 조작을 하신 것인지.

 

평소에도 나에게 주시는 아빠의 사랑은 반짝 반짝 빛난다.
동생들이 아빠는 언니만 좋아한다고 시샘할 만큼.
작은 것이지만 이렇게 아빠의 사랑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