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비(雨)에 관한 짧은 이야기
바람 행짱
2002. 8. 9. 08:53
며칠째 마루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비는 내게 특별한 의미였다.
내가 경험한 많은 감정의 경험에 비는 단골 손님이었고, 난 비와 관련된 추억 만들기를 좋아한다.
빗속에서 춤추기, 비오는 날 양수리 가기, 울고싶은 날 빗속에서 울기, 비오는 바다 바라보기, 비오는 산 등산하기, 비오는 날 요리 만들기, ...
난, 지금도 비가 오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그 잔잔한 파문은 비에 대한 새로운 추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비는 내게 많은 이미지를 심어주었지만 내게 비의 이미지가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기억은 10살 때쯤이었다.
아이들은 잘 시간이라고 불을 꺼버린 안방에서 볼륨을 낮춰 켜논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진 캐리 주연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in the rain)'가 방송되고 있었다.
자는 척 하다가 어느새 일어나 앉을만큼 그 영화는 어린 내게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비를 배경으로 흘렀고, 특히 진 캐리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텝댄스를 추면서 'Singin'in the rain'을 부르던 그 장면을 가득 채웠던 시원한 빗줄기는 어린 내 가슴에 강렬하게 내렸다.
이 영화로 인해 나는 비에 대한 유쾌하고 즐거운 첫번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비를 우울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 이후 비는 외로움, 슬픔, 고독 등 우울한 이미지로도 내게 다가왔지만 그 때의 행운으로 인해 지금도 비는 하늘에 내게 주는 유쾌하고 즐거운 선물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비에 대한 추억이 있다.
이건 내 많고도 많은 소원 중의 하나인데, 울적한 기분일 때 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난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에 한 면이 모두 유리로 된 집을 하나 가지고 싶다.
그 집은 내가 좋아하는 산과 바다 그리고 비를 위한 장소인데, 그 집에서 비를 맞는 기분은 아주 특별할 것이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넓은 창에 음표가 되어 흘러내리면 그 음표에 맞춰 산 속의 나무들은 쏴악 쏴악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다는 안개옷으로 갈아입고 빗소리에 맞춰 율동 큰 춤을 출 것이다.
문득 비를 맞고 싶어 문 밖으로 나가면 산의 고운 흙은 비로 인해 어느새 결고은 진흙이 되어 사뿐이 내려 딛는 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힌다.
이 소원은 생각만으로도 내게 행복한 느낌을 가득 안겨주어서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진 소원이나 마찬가지이다.
추억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또 즐거운 고민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