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박카스 좋아하세요?
바람 행짱
2002. 12. 5. 13:02
어렸을 때 어쩌다 한번씩 마신 박카스는 아주 색다른 맛이었다.
쌉싸름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그 맛은 어린아이에게는 좋지 않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한 귀로 흘려버리게 할만큼 매력적이었다.
박카스 한 병을 얻게 되면 한번에 마셔버리는 것이 아까워 뚜껑에 따라 노란 액체로 우선 눈을 즐겁게 한 다음 혀끝을 살짝 적셔가면 조금씩 마시곤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나와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무실은 전쟁터 같다.
신학기에 맞춰 참고서를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연일 계속되는 야근에 주말도 없고, 심지어는 철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얼굴에 윤기가 사라지고 표정도 사라졌다.
누구 하나 날 건드려만 봐라, 그 핑계로 폭발해버릴테다하는 얼굴로 앉아 있다.
사실 내가 피곤하면 남도 같이 피곤한데 워낙 지치다 보니 남을 생각할 여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느 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보니 책상 위에 박카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거 뭐야?"
"Y가 돌린거예요."
"과장님 드시고 기운내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내가 박카스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저도 박카스 좋아하거든요. 과장님 드시고 지킬 것은 꼭 지키세요."
"알았어. 이 웬수는 꼭 갚을께."
작은 박카스 하나로 오래간만에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 이후 우리 사무실에는 박카스가 자주 눈에 띄이게 되었다.
슬며시 건네는 박카스 한 병은 말없이 흐르는 우리 사이의 정을 느끼게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내 중심으로 살아도 세상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작은 마음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내 책상 위에는 박카스 한 병이 놓여 있다.
어렸을 때 내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주었던 박카스가 이제는 내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 방에 들어오시는 모든 손님들께 오늘은 주인장인 제가 정을 담뿍 담은 박카스 한 병을 드립니다.
마시고 힘내세요.
그리고 지킬 것은 지켜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