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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관객모독

바람 행짱 2004. 3. 29. 19:50

2004. 3. 27. 土.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모르는 사람과 엉덩이 한쪽을 붙이고, 뒷 사람의 다리가 내 등을 쿡쿡 찌르는 그런 작은 소극장에서 연극은 시작되었다.
너무도 잘 짜여져서 오히려 연극같지 않은 연극.
필연을 우연으로 느끼게 하는 연극.
관객모독은 그런 연극이었다.

 

배우들은 계속 관객을 향해 말을 건다.
이 연극은 관객들이 까만 어둠 속에 앉아 유리한 입장에서 밝음 속에 노출되어 있는 불리한 입장의 자신들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리고 연극과 인생, 그들과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연극이라 믿었던 것, 현실이라 믿었던 것의 경계를 부정하면서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이미 사라졌음을 주장하며 기존의 형식적인 연극의 틀을 벗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저 그들의 주장과 몸짓에 웃음밖에 끌어낼 것이 없는 우리들.
그들은 그들과 우리가 하나임을 주장했지만 우린 여전히 관객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관객을 모독할 수 밖에.
소금 세례, 물 세례를 받고도 그저 웃기만 하는 우리들.
우리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는 그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들의 주장대로 서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을 뿐 경계없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서로에게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하면서도 함께 웃고 그것을 욕으로 삿대질로 느끼지 않는다.
극장 밖 세상 속에서도 이렇다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질까?

 

배우들의 너무도 능청스런 연기가 소름을 돋게 하고, 우리를 무대 위로 이끄는 그 자연스러움이 웃음을 연출한다.
1시간 30분 동안 그들의 유쾌한 수다로 내 마음에 시원하게 물을 주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 진짜 연극은 이제부터 시작임을 느낀다.
무대 위의 배우인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
이제 다시 연극은 시작된다.
극본, 연출, 주연의 일인 삼역을 소화해내는 나의 멋진 연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