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부모님 함께 한 주말 산행

바람 행짱 2004. 4. 8. 11:49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진 부모님께 주말 등산을 제안했다.
산을 좋아하지만 잘 오르지는 못하는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거창한 등산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주말마다 운동 삼아 집앞의 관악산 줄기를 오르자고 말씀드린 것이다.
말이 나오자 아빠는 홈쇼핑에서 봐두신 가벼운 경등산화를 사주셨고, 지난 주말 아빠, 엄마, 나까지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첫 등산을 나섰다.


등산을 나서기 전에는 전국 팔도 유명한 산은 모두 오르신 아빠에게는 쉬운 산행이고, 다리가 약해 그동안 등산은 엄두도 내지 않으시던 엄마에게는 무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느리지만 꾸준히 걸음을 옮기시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등산을 시작한 지 15분을 넘어서자 바로 힘들어 하기 시작하셨고, 30분을 채우신 후에는 '난 여기서 시마이[終]'를 외치며 백기를 들어버리셨다.
30분만에 산행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엄마와 나는 30분 정도 더 산을 오르다 아래에서 기다리실 아빠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이만한 산도 힘들어 하시다니 아빠가 많이 늙으셨다는 것을 실감했고, 내려오는 내내 가슴에 뭔가 큰 덩어리 하나가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이 그 동안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철없이 살다보니, 때가 되면 부모님의 생신만 챙길 줄 알았지 두 분의 연세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새삼 따져보니 어느새 아빠가 66세, 엄마가 62세이다.
이젠 어찌할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인 것이다.
새삼스레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니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늘었고, 머리 위에는 하얀 서리가 더 많이 내려있었다.
지금까지 부모님은 나를 둘러싸주시는 든든한 울타리같은 존재였는데, 이제는 부모님과 나의 역할이 바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봄산은 진달래를 활짝 피워 멋을 내고, 나무들은 지난 겨울의 약속을 지키며 여린 새잎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자연의 순리대로 봄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봄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엄마, 아빠에게도 인생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본다.
그야말로 이제부터 엄마, 아빠의 '回春'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은 60세부터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아빠는 6살, 엄마는 2살 꼬마인 셈이다.
그동안 부모님이 내게 그래주셨듯이 이제부터 난 다시 인생을 시작하시는 두 분의 든든한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그리고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주말 산행을 꾸준히 실천해야겠다.

 

진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