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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바람 행짱 2004. 8. 20. 19:58

울준비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사랑의 끝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끝 자리에 선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온 마음을 바쳤던, 의심없이 영원하리가 믿었던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랑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 한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사랑의 끝 자리에서 여자는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은 고독과 외로움을 낳는다.
그 고독과 외로움에 사랑은 말라가며 울 준비를 한다.
그러나 준비되어 있기에 사랑의 끝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사랑의 끝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사랑을 하면서 희망과 열정으로 그렸던 미래의 모습과 다르기에.
사랑을 하면서 함께 맞으리라 믿었던 미래가 아니기에.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그 낯선 모습 앞에 서면
오히려 담담하게 그 모습을 끌어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끝난 후의 낯선 모습 뒤로 남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사랑을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또한 같을 수 밖에 없는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

 

그리고 지난 추억...
어쩜 사랑은 추억으로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은 앞서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과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앞서 읽었던 소설들은 다양한 색을 담았다면 이 단편집은 온통 회색이라고 할까.
작가는 후기에서 이 단편집에 대하여
'맛은 달라도 성분은 같고 크기도 모양도 비슷비슷한 사탕 한 주머니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다'
라고 하였지만 내게는 말라서 딸깍딸깍 소리를 내는 호두 12알을 내 손에 쥐어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