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다.
3년 전 뮤지컬이 한국에서의 장기 공연으로 떠들썩했지만 볼 기회를 놓쳤었다.
그런데 뮤지컬 원작자가 그 뮤지컬을 영화로 제작하였다.
줄거리도 알고, 음악도 이미 귀에 익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줄거리와 음악을 확인해 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뮤지컬 공연 관람에 익숙해진 눈과 귀라 뮤지컬 영화라 해도 뮤지컬 공연장의 그 생동감은 그대로 살릴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영화에 대한 기대는 반쯤으로 줄었었다.
막상 영화를 보면서 내 관심은 줄거리나 음악이 아니라 팬텀이란 인물과 그의 사랑에 집중되었다.
나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본 한 후배의 말이 '이거 스토커 영화네'였다.
팬텀의 크리스틴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랑을 '스토커'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일 게다.
그러나 난 그런 팬텀의 사랑이 가슴 아팠다.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팬텀은 우리 속에 갇혀 사람들의 돌 세례와 멸시를 받으며 자랐다.
그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은 미움과 증오뿐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사람들을 피해 숨은 지하 세계는 사람들과의 거리를 더 멀게 했고, 그를 그만의 세계에 갇히게 했다.
어쩜 그의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은 세상과 팬텀 사이의 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크리스틴이란 이름의 한 소녀를 만난다.
팬텀은 그녀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녀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팬텀이 그 감정을 표현한 방법은 자신의 세계로 크리스틴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틴에게 팬텀의 세계는 어둡고 두려운 공포의 세계였다.
팬텀의 사랑은 그 자신에게도 낯설었지만 크리스틴에게는 더더욱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팬텀의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은 그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천형이었다.
그 천형은 팬텀의 사랑에도 하얀 가면을 씌워 그 누구도 그의 사랑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팬텀의 사랑은 크리스틴에게는 단지 두려움일 뿐이었다.
그런 크리스틴을 팬텀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지킨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랑은 상대방의 이해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한 사랑은 빛을 잃고, 빛을 잃은 사랑은 가슴에 바람을 채운다.
내가 팬텀의 사랑으로 인해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그의 가슴을 채운 바람 때문이 아니라 바람을 채울 수 밖에 없었던 팬텀의 운명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에 가면을 씌운 운명, 사람들에게 유령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운명이 가슴 저리게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