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도중 한 쌍의 부녀가 내 옆에 섰는데, 아버지의 모습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나이는 50대 전후인 것 같은데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데다 곱슬거리는 파마를 하였고, 추운 날씨임에도 요란한 프린트의 셔츠 단추를 여러 개 풀어놓아 굵고 노란 금목걸이가 축 늘어져 목에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내 속마음이 말을 했다.
'저 아저씨 직업은 뭘까? 치장 한 번 요란하네. 내가 저 아저씨 딸이라면 같이 다니는 것이 창피하겠다.'
잠시 후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보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탄 아저씨는 조작판 앞에 서서 나를 흘끔 쳐다보다니 17층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내가 28층 버튼을 누르자 아저씨는 만족한 듯 씩 웃으며 딸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 이러면 기분 좋더라."
그 말에 의아해 하는 것은 아저씨의 딸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뭐가 기분 좋아, 아빠?"
아저씨는 그 질문에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
"같이 가는 사람보다 내가 먼저 내리잖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내가 웃자 민망했는지 아저씨의 딸이 나를 쳐다보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도 참. 그게 그렇게 기분 좋아?"
"응 난 좋더라."
이번에는 아버지와 딸의 대화가 재미있어 계속 웃던 내가 말을 보탰다.
"저는 두 분이 먼저 내리셔도 기분 나쁘지 않아요."
내 말에 두 사람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17층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나에게 기분 좋은 인사를 남기고 내렸다.
혼자 엘리베이터에 남아있는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아저씨에게서 맑은 동심을 보았고, 부녀의 대화에서는 편안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저씨에 대해 선입견을 품었던 내 태도를 반성했다.
앞으로는 외모나 외양은 사람의 취향일 뿐이니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선입견 따위는 버려야겠다고.
엘리베이터에서 이 부녀를 다시 만나면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해야겠다.
해우소에 버려야 할 것은 변만에 아니다.
근거 없는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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