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선암사에 갔을 때는 흰 눈이 나를 맞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가 나를 맞는다.
녹음과 어우러지는 비.
선암사에서 비를 느꼈다.
계곡의 물소리에서도 비를 느낀다. 빠른 템포와 강한 음색.
켜켜히 쌓인 돌이 다리를 만들고, 세월을 담는다.
객을 기다리는 나무 의자는 내리는 비가 안타깝다.
조계산 선암사. 첫 번째 방문에서의 독경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연꽃이 활짝 피어 웃는다.
한적한 경내는 내리는 비로 차분하다.
스님의 목탁 소리는 탁탁탁. 내리는 빗소리는 톡톡톡.
흩뿌리는 비를 따라 선암사를 둘러보았다.
내리는 빗줄기가 오랜 절간에 그림에 되어 얹힌다.
나뭇잎은 빗방울의 흔듦에 경쾌해지고.
활짝 웃고 있던 꽃은 빗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꽃잎을 뚝뚝 떨군다.
구석구석 나무가 있고, 비가 내린다.
먼 산은 안개로 희미하고.
땅과 하늘의 경계가 희미하다.
촉촉한 땅은 지친 객의 발길을 감싸안듯 맞아준다.
개구리가 폴짝 뛰어나와 개골개골 노래를 할 듯하여 발길을 멈추고 기다려 본다.
비를 만난 담쟁이가 합창을 한다.
세상 모든 근심이 모두 사라진 이 곳에서,
바짝 말라있던 가슴도 촉촉해진다.
비가 세상과 나를 바꾼다.
이 비를 기억한다.
언제든 습기 빠진 마음에 뿌릴 수 있도록.
비는 또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터지고 갈라진 마음을 가진 중생이 사는 세상을 향해.
하늘은 흐려도 마음에는 맑은 풍경 소리가 가득 담긴다.
맑은 빗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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