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여행 이야기 (3/5)

바람 행짱 2003. 6. 5. 11:43

경주를 출발했다.
어제 잠시 들렸다 일주문에서 뒤돌아섰던 감포 기림사를 다시 찾은 시각이 오전 7시.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한 시간 더 기다렸다가 매표한 후 들어가라고 하신다.
아저씨에게 어제 들렸던 일과 시간이 없음을 사정하고 들어갔다 나와서 매표하겠다 약속을 한 후 계곡을 따라 기림사에 들어섰다.
기림사는 신라시대 지어진 절이라서 몇 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깔끔한 절도 좋지만 울창한 나무에 반해서 올려도 보고 만져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불경 소리도 인적도 없는 경내는 새벽에 쓸어놓은 빗질 자욱이 선명하다.
조용한 경내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다 걸어나오니 아까의 아저씨는 없다.
오호, 부처님 죄송합니다.
저희들 표 끊지 않고 그냥 가겠습니다.
분명 매표를 하라는 것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뜻일테니 용서해 주십시오.
고개 숙여 인사하고 기림사를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해인사.
해인사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고, 성철 스님의 사리가 모셔지면서 예전과는 달리 화려하게 장식이 되기 시작한 절이다.
뭐든 처음이 좋다고 해인사 역시 10년 전 처음 갔던 그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몇 년 전 들렸을 때 한창 공사 중이던 불교 박물관이 완공되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거리감만 느껴진다.
동행인 친구가 초행길이라 꼭 들려보고 싶다고 해서 들렸지만 역시나 팔만대장경의 경이로움을 제외하고는 시장같은 느낌이다.

이제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88고속도로를 달리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바꿔타고 다시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남해.
우선 미조항으로 향했다.
수산물 축제가 열리고 있는 미조항은 지역 주민들의 잔치 분위기로 흥겹다.
작년 남해에 왔을 때에는 포구에서 멸치를 사서 석쇠에 구워먹었는데 이번에는 멸치회를 맛보았다.
멸치가 이런 맛이라니...
진짜, 진짜, 정말, 정말 맛있다.
상추에 싸서 먹고, 밥에 비벼 먹고...
어둠이 내린 미조항을 뒤로 하고 금산으로 향한다.

금산 보리암 옆의 금산 산장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어두운 밤 금산의 8부 능선까지 차가 뒤집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며 올라간다.
어찌 어찌 하여 올라간 주차장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보리암까지 걷는다.
어둠에 쌓인 산은 석탄일을 맞아 걸린 연등만 희미하게 빛을 낼 뿐이다.
연등이 안내하는 길 양쪽 옆으로 보이는 산 밑의 불빛이 보석같다.
보리암부터 산장까지는 연등마저 없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며 산장에 도착.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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