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서 출판 일을 시작하면서 목표를 세웠었다.
수학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실용성을 알리고 싶었고,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석을 능가하는 수학책을 만들고 싶었다.
전자는 교육과정 수정에 따른 교과서 개편과 함께 앞으로 이뤄가야 하는 일이고, 후자는 어느 정도 목표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이다.
2004년 기획해서 개발한 수학 참고서 브랜드가 2005년에 좋은 반응을 얻어 학생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6년인 올해에는 정석에 버금가게 학생들이 찾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수학 참고서 브랜드로 인해 나는 요즘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책이 출간된 이후로 매일 매출을 확인하면서 혼자서 머리에 꽃 꽂은 사람마냥 히죽히죽 웃었다.
게다가 목표 달성에 대한 포상으로 그간 고생했던 부서원 전체와 해외연수까지 가게 되었으니 입가에 웃음이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가 천국의 이야기였고, 이제부터는 지옥의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불황인 참고서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이 있다고 소문이 나니 경쟁사에서는 앞 다투어 모방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니 내년에는 새로운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함은 물론이고, 올해보다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매출을 보며 웃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러던 와중에 큰 사고가 날 뻔한 일이 발생하였다.
우연히 인쇄가 끝난 책을 보다 오류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류 없이 완벽한 책을 만들기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제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있어서는 안 될 실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류를 책을 제본하기 전에 발견한 것이었다.
직원들에게 한바탕 주의를 주고 오류가 발견된 책을 포함해서 모든 책의 문제를 다시 풀게 했다.
그 결과 그 문제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문제가 되는 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내년도 제품에 대한 준비를 하는 내내 부담감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에 오류를 발견하고 재검토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이전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마무리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지옥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나팔 소리를 들은 것이다.
편집에는 참여하지 않는 내가 우연히 본 문제가 오류 문제였고, 수천 개의 문제 중에 딱 하나 있는(?) 오류 문제를 그렇게 발견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또한 오류 문제가 책이 되어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면 현재 이 브랜드가 갖는 인지도가 크게 손상되었을텐데 책으로 제본되기 전에 발견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 틀림없다.
잠시 심장이 발끝까지 툭 떨어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사고를 막았으니 이보다 더 다행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일로 천국의 나팔 소리를 들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만든 이번 제품도 소비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천국에만 머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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