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L을 보내며

바람 행짱 2006. 10. 12. 21:48

새벽 2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왔다.

어제 세상을 버리고 떠난 L 때문이었다.

"아까워서 어쩌니. 니 인생이 아까워서 어쩌니? 그렇게 힘들었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선택할 만큼?"

내가 알던 그 건강하던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특출났던 녀석은 수재 소리를 들으며 흔히들 이야기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공부하는 녀석답지 않게 화통하고 사교적이어서 L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호감을 갖았다.

그랬기에 주위 사람 모두가 L이 성취해 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일마냥 기뻐하고 더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너무 지나쳤었나보다.

L이 그 기대의 무게에 짓눌릴 만큼.

 

오늘 신문에는 L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났다.

몇 줄 기사 속의 L은 왜 그리 낯선 사람인지.

기사 속의 L은 내가 알던 L이 아니었다.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L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L은 오늘 한 줌 재가 되었다.

새털보다 가벼운 재가 되었다.

이제 훨훨 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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