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다니면서 잃어버린 계절이 있다.
바로 가을이다.
신제품 출시로 가장 바쁜 시기가 가을이다보니 언제나 가을은 잊고 지낸다.
게다가 출가까지 감행한 올해는 더더욱 가을은 내 계절이 아니다.
새벽에 퇴근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생활을 하는 요즈음, 내게 가을은 눈에 담아서는 안 될 사치품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오늘 그 사치품을 눈에 담는 행운을 누렸다.
교과서 제출 설명회가 있어 삼청동에 갔는데, 그곳에 가을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높고 파란 하늘과 정열적인 단풍나무, 그리고 수줍어하는 은행나무까지.
가을은 삼청동에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가을이 너무 좋아 헤벌레...삼청동길을 멍청한 미소를 흘리며 걸었다.
그리고 조금 행복했다.
이렇게라도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
교과서 작업이 끝나면 가을은 이미 자취를 감출테지.
교과서가 끝나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를 다시 찾고 싶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버젓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던 가을처럼,
지금은 잊고 살지만 멋지게 살기를 꿈꾸며 있을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