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아까운 내 검은 머리카락!!!

바람 행짱 2002. 3. 7. 13:27

나에게는 일에 몰두할 때 나오는 버릇이 하나 있다.
오른손이 펜을 들고 있을 때 심심해 하는 왼손으로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잡고 빙빙 돌리거나 머리밑을 더듬다가 돌출 부분이 만져지면 무조건 뜯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머리밑은 늘 화끈거리고 딱지가 잔뜩 앉아있다.
가끔 유난히 머리밑이 화끈거릴 때면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난 비구니는 못되겠다. 삭발을 하면 머리밑이 엉망일테니."
이렇게 머리카락을 수난에 빠뜨릴 때면 일명 돼지털이라는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손에 잡힐 때가 있다.
왜 이렇게 기형적인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는 돼지처럼 영양분을 폭식해서 그렇지 않나라고 짐작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돼지털이 잡히면 난 무조건 그 머리카락을 뽑아 버린다.
롤스트레이트 파마로 깔끔하게 정열시킨 내 머리카락 대열에서 혼자 돌출되어 있는 것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일에 몰두하며 머리카락을 괴롭히고 있는데 돼지털 하나가 내 왼손에 걸린 것이다.
순간 본능적으로 그 머리카락을 내 두피에서 떼어내려는 압력을 가하려는 내 왼손을 내 우뇌가 정지시켰다.

왼손 : 야, 왜 멈추는 건데?
우뇌 : 너 요즘 우리 주인이 흰머리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
왼손 : 그건 내가 알바 아닌 것 같은데.
우뇌 : 얌마, 그러면 안되지. 한 몸에 있으면서 그렇게 무관심하면 되냐?
왼손 : 심각한 정도야?
우뇌 : 내가 보기엔 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은데 우리 주인은 심각하게 생각하나봐.
왼손 : 그럼 이제부터는 돼지털이라도 검은 머리카락은 뽑으면 안되겠네.
우뇌 : 당근이지. 우리 주인 이제 새롭게 나는 머리카락이 모두 흰머리같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검은 머리 뽑았다간 너 혼 좀 날걸.

그래서 내 왼손은 슬며시 그 머리카락에서 힘을 빼었고, 내 입에선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사실 빨리 머리가 세기 시작한 엄마의 영향인지 요즘 흰머리가 유난히 많아지고 있어 나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만 이렇게 검은 머리카락 하나가 아까워질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이제는 눈에 보일 때마다 뽑아내는 흰머리카락마저 아까워 염색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늘어가는 흰머리나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를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여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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