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내게 '운명'과 '경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였다.
'운명'에 대하여
운명이라는 것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의지와 거리감 있는 현실 속에서 운명은 그 거리감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지금도 그 때와 다르지 않다.
삶의 여정에서 앞이 가로막힐 때마다 운명은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유용한 도구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운명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여자의 삶의 궤적에서 운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신랄한 모습을 보았다.
운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희노애락의 경계선에서 몸부림 친다.
아니, 춤을 춘다고 해 두자.
어찌되었든 인간의 삶은 아름다우니까.
앞으로 내 인생에서 운명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릴까?
내가 확실히 아는 운명을 딱 하나이다.
그것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는다는 것.
그 때까지 운명을 때론 반갑게 때론 거칠게 거부하며 맞겠지.
다가올 운명도 미래도 모르기에 인생은 살만한 것일게다.
그래, 분명 살만한 것일게다.
'경험'에 대하여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던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 논픽션 20%에 픽션 80%가 버무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올가라는 여주인공은 실존 인물이고, 그녀의 이야기는 몇 안 안 되는 소재들을 바탕으로 소설로 재구성된 것이다.
일본인인 작가가 어린 시절을 체코에서 보낸 것도, 게다가 소비에트 학교를 다닌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경험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되고, 세상에 내놓게 된 힘이었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경험이 부러웠다.
언젠가 작가의 가장 큰 힘은 '경험'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지금 시멘트 상자에 갇혀 있다.
이 상자 안에서의 경험은 제자리걸음이다.
걷기 위해선 그리고 뛰기 위해선 이 상자를 부숴야 한다.
나를 가두고 있는 이 상자를 부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운명일까 아닐까?
나는 이 상자를 부수는 경험을 하게 될까 하지 못할까?
실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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