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잔상

여름 제주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바람 행짱 2010. 9. 5. 20:49

살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빠져든 적이 없다.

미치도록 빠져든다는 것은 결국 사랑이겠지?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가 전부였던 사진가 김영갑.

고인이 된 그가 남긴 제주도가 담겨 있는 곳이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다.

제주도에 여러 번 갔어도 이 갤러리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고, 당연히 방문도 처음이었다.

그의 지독한 제주 사랑을 눈으로 보며 가슴으로 느끼며, 어쩌면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독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새로운 일을 성공시키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그 일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중에 이 갤러리를 짓기 시작했다.

 

갤러리 정원에는 여러 표정의 토우가 있다. 하나하나의 표정이 다정스럽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주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이 사진 한 장에 큰 세상이 작게 담겨 있다.

 

세상의 둘레는 인간을 감싸고 무겁게 내리 누른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 세상의 둘레와 만나지 않는다.

 

갤러리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갤러리 밖의 작은 찻집.

 

창으로 스미는 파란 빛이 좋았고, 한적함이 좋았고, 사람을 믿는 마음이 좋은 곳이었다.

 

찻집 방명록에 끄적거린 글. '피클'이 뭘까? 그것은 지금 내가 지독하게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찻집을 나오니 비가 지나간 정원이 싱그럽게 나를 맞는다.

 

이렇게 편한 얼굴로...

 

이 토우들의 표정이 곧 내 표정이고, 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