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학교 강당에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상영하였다.
친구들이 예술 영화를 선호하지 않아서 혼자서 영화를 봤다.
그때 나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끝내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인간의 깊은 질문과 그런 인간을 둘러싼 풍경은 인상깊었다.
안동 봉정사가 그때 그 영화의 배경이라는 것은 사찰 입구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봉정사에서 20여 년 전 답을 얻지 못했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다시 생각했다.
소나무의 자유로움이 새삼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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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늘 푸르지만 사계절의 푸르름이 다르다.
천등산 봉정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45도로 기울어진 소나무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사찰 입구를 지키고 있다.
굵은 옹이들이 거친 세월을 담고 있는듯 하다.
사람과 자연은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
이 문을 들어서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알게 될까?
질문을 마음에 담자니 답을 구하는 구도자가 된 듯 하다.
스님의 목탁 소리가 탁,탁,탁. 질문 담긴 마음에 같이 담긴다.
긴 세월 동안 많은 구도자가 답을 얻고자 했겠지?
묵묵히 앉아있는 불상은 답을 알고 있을까?
오랜 세월 봉정사를 지킨 이 삼층 석탑이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 앞에서 답은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히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답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심한 발걸음으로 경내를 천천히 걸어본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깨닫지 못 했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무심히 살아도 언젠가는 답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답을 얻지 못한 구도자였지만 나도 이 멋진 풍경에 어울리는 그림이었다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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