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종교 수난사를 접할 때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여러 번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아니다'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못한다'일 것이다.
살면서 아직은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지녀보지 못했다.
종교는 물론이거니와 사람, 사랑, 꿈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갈매못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5명의 성인을 기리는 순교성지에서 그들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신념을 경외심으로 되새기게 되었다.
이렇게 푸근한 예수님은 처음 뵙는다.
일요일 미사를 올리고 있는 성지엔 신부님 말씀만 가득했다.
가을이 오롯이 담겨 있는 모습에 발길을 멈추었다.
누군가 꺾어놓은 가녀린 코스모스에서 가을 향기가 흐른다.
순교한 성인을 기리는 기념관조차 왠지 강건해 보였다.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깊이 보았다.
그리고 그 신념의 깊이를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건 상상할 수 없는 깊이였다.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이는 듯 했다.
내가 다다를 수 없지만 다다르고 싶은 무언가가 가슴에 새겨진 듯 했다.
계절은 순리대로 오고가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왜 각자의 순리가 어긋나는 것일까?
신부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 마음 속의 웅성거림도 커진다.
짧은 시간에 답을 찾을 수는 없으리다.
천천히 미사를 올리고 있는 성당을 향해 걸었다.
성당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바다를 품는 모습으로 서 있다.
지붕의 십자가는 낮게 깔린 하늘에 닿을듯 하다.
일요일이라 성지순례를 온 신자들이 많았다.
저 아래 모래사장에는 아직도 성인들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겠지?
다시 문이 닫히고,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다섯 성인의 모습이 보였다.
목숨을 바치지는 않더라도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그런 가치 하나쯤을 찾아야 이 세상 떠날 때 제대로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지.
저 돌계단을 빼곡히 채워 앉았던 신도들의 가슴에 종교에의 신념이 있듯이.
종교이건 아니건 그런 신념을 가슴에 채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지?
짙게 내려앉았던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공허했던 내 가슴에는 기대감이 파랗게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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