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폰소 쿠아론 /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 미국 / 2013
지구가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 중력.
지구와 나는 중력에 의해 묶여 있다.
이 묶임에서 우리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지구에 내가 종속된 관계이다.
다시 말해서 중력은 인간을 종속시키는 지구의 힘이다.
그래서일까?
간혹 지구에서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버겁다.
그렇다면 중력에서 벗어나면 어떨까?
영화가 시작되면서 지구인이었던 나는 우주인이 되었다.
그 순간 복잡함은 단순함으로 소란함은 고요함으로 바뀌었고, 지구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 단순함, 고요함 그리고 홀가분함이 우주라는 거대한 힘에의 종속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우주인이 아니라 우주복을 입은 지구인일 뿐이었다.
우주에서 재난을 만난 순간부터 나는 그동안 내 안에 켜켜이 쌓였던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을 느꼈다.
지구는 내 삶과 아픔의 원천이자 그것을 품어서 치유하는 자궁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구라는 자궁으로의 귀소 본능이 더 강렬해졌다.
하지만 그 강렬함 뒤에 찾아온 것은 삶과 죽음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순간에 맞은 희열이었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삶에 대한 절실함과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쾌감이었다.
나는 지구로 돌아왔다.
대기권에 들어서고 물속에 가라앉고 진흙에 파묻히면서 지구의 힘을 온전히 느끼며 돌아왔다.
다시 삶을 지속할 것이고 나는 간혹 그 삶을 버거워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구라는 자궁이 나를 품고 치유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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