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난 혹을 발견한 이후로는 술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다.
한 때는 즐겁게 술자리에 동석했었는데 이제는 위에 알코올을 살짝 바르기만 해도 바로 안 좋은 반응이 오기 때문에 술은 마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제는 술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예전 내 술버릇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말이 많아진다는 것.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편이 아닌데 술을 마시면 유난히 말도 웃음도 많아진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을 하늘로 붕 띄워올린다는 것.
술만 마시면 왜 그리 동석자가 예뻐보이는지 평소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어도 술만 마시면 그 사람의 장점만 생각나서 떠들어댄다.
그렇다고 술이 깬 다음에 내가 했던 말들을 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술은 본의 아니게 내 인간 관계에 도움을 주었었다.
술이 이렇게 도움을 주는 매개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음주를 권할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지난 토요일 밤, 어쩌다 보니 밤 12시가 넘어서 가리봉 시장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게 되었다.
가리봉은 최근 중국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여기 저기서 연변 사투리가 들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은 급해지는데 도로에 차는 없고,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려 해도 택시조차 없었다.
야심한 시각에 낯선 곳에서 낯선 말소리를 듣고 서 있자니 불안감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감에 불을 붙이듯이 갑자기 여기 저기서 고함 소리가 들이기 시작하더니 그 고함 소리는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잔뜩 긴장해서 둘러보니 여기 저기서 치고받으며 싸우는 패거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자주 이런 일이 있는지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차가 나타났고, 경찰이 싸움을 저지하려 했지만 워낙 싸우는 패거리가 많아 경찰 몇 명으로는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때마침 구세주처럼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고, 버스에 올라탄 후에야 불안감이 가라앉았다.
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언젠가 수학 세미나에 갔다가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른 인간의 변화를 문제화 한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그렇게 알코올 농도에 따른 인간의 변화가 일정한 형태를 보인다면 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질 것도 없이 인간이 술을 지배하면 술로 인한 좋지 않은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흔히들 술을 마시다 보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신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술은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다.
적어도 인간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지배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술을 즐기고, 술로 인해 즐거운 음주 문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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