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 이차카와 미카코, 카세 료, 미츠이시 켄, 모타이 마사코 / 일본 / 2007
아주 오래전 사는 게 지루했던 때가 있었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늙고...
삶의 패턴은 대동소이한 것 같았고, 추구하는 가치도 비슷하게 여겨졌다.
이런 세상이라면 굳이 더 살지 않아도 미래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건방도 떨었다.
아마도 그 당시 삶을 보는 내 시력이 떨어져 안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양수 같은 봄 바다가 있는 남쪽 작은 마을에는 한가롭게 시간을 엮으며 미소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마을에서의 시간은 어느 날 현재를 놓아버리고 이 마을로 들어온 한 여자가 뜨는 빨간 목도리로만 기록된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젖어듬'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안경이 하나씩 걸쳐져 있다.
그 안경의 용도는 잊었거나 혹은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안경점에 들렸다.
세속적인 가치와 잣대에 젖어들어 있는 내게도 시력 회복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언젠가 봄이 오면 안경을 끼고 남쪽 작은 마을을 찾아가고 싶다.
아마도 나는 안경 낀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 있을 거다.
봄의 바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사람들은 말없이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그중 한 남자가 독일어로 시를 읊는다.
이 시가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일 것 같다.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라
깊은 바다에는 가까이 가지마라
그런 그대의 말들은 뒤로 하고 왔다
달빛은 온 거리를 비추고
어둠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보석처럼 빛난다
우연히 인간이라 불리며 여기 있는 나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무엇과 싸워왔는가
이제는 어깨를 누르는 짐을 벗어비릴 시간
나에게 용기를 다오
너그러워질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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