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왔다.
제주는 나에겐 힐링의 섬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와서 마음에 담긴 모든 것을 다 비우고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있는 지금 마음이 무겁다.
올해 초부터 아버지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79세의 연세에도 테니스를 할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석 달여 만에 몸을 못 가누실 정도가 되었다.
종합검진부터 내시경, MRI, CT, 혈관 검사, 치매 검사까지 필요한 검사를 다 받았는데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노인성 퇴행 질환이라고 하기에는 상태가 나빠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작년 결혼 50주년 기념으로 온 가족이 제주도에 왔을 때는 앞장서던 분이 지금은 호텔 침대에서 꼼짝을 안 하신다.
이번 여행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계획했다가, 아버지 건강 때문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우울해 하셔서 기분 전환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여행을 앞두고 아버지 상태는 더 안 좋아져서 여행을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두 분 모두 여행을 고집하셔서 마음에 걱정을 한가득 담고 제주에 왔다.
지난 4월 한 달은 살면서 가장 마음이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학업이나 일이 힘들 때와는 다른 힘듦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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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제주에서 위의 글을 쓸 때는 겁에 질린 상태였다.
조금의 움직임도 힘들어하는 아버지 곁에서 깊은 밤에 드리워진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글을 썼다.
두려운 밤을 보내고 새벽부터 병원에 직접 연락해 보고 119에도 전화해서 병원을 알아봤지만, 제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비행기 표를 겨우 구해서 서울 병원에 모시고서 안도한 것도 잠시, 정밀 검사 결과 아버지는 뇌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희귀암이라서 그동안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했고,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온 가족이 충격에 빠져있다.
지금 내 옆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너무나 낯설어 이 모든 게 꿈 같다.
진단을 받은 후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리고 대성통곡을 했더니 이제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우리 집 가장이고 아버지의 보호자이기에 이 상황에서조차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버겁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나도 곁에서 강한 모습으로 함께할 것이다.
앞으로의 일들은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과 같든 다르든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간절하게 바란다.
아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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