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닷새였지만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차례를 모시기 때문에 전 부치기와 송편 만들기는 내 몫이고, 손님 대접에, 조카들과 놀아주기까지...
이렇게 정신 없이 연휴를 보냈건만 속 모르는 아줌마 친구들은 솔로라 일 안 해서 좋겠다고들 한다.
일복 타고난 사람이 한가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이렇게 연휴를 보내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9월 말까지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연휴 기간 동안에도 출근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닷새를 모두 집에서 보낸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비록 정성껏 빚은 송편을 싸들고 출근했지만 그래도 계속 고생한 직원들 얼굴을 마주 바라보기엔 내 낯이 너무 얇았나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버릇대로 메일 확인하고 칼럼방에 들어서는 순간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꼿꼿이 세워 들었다.
"아니 내 방 식구들이 언제 이렇게 늘었지? 이거 프로그램 오류난 것 아니야?"
혼자 중얼거리며 방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면서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던 나, '봄날'님의 답글을 보고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사태를 파악한 후 밀려드는 부끄러움...
사실 이렇게 방을 만들어 놓고 내가 아는 그 누구에게도 내게 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우연히 지나치다 들리는 길동무들이 나와 마음이 맞으면 머물겠거니 생각하였고,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해 '수다'도 더 편하게 늘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갑자기 식구들이 늘고 나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든 것이다.
난 대가족의 일원이길 동경했다.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왁시글덕시글 모여 산다는 것, 흥미롭게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왕 이 방의 식구들이 늘었으니 부끄럽지만 더 신나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처녀의 수다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방 식구들만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 글을 읽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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