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다

구두 수선 아저씨의 응급처치

바람 행짱 2003. 10. 17. 08:31

몇 년을 신은 구두가 밑창이 벌어졌다.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뒷굽을 갈았었고, 오래되어서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도 수선을 해서 신었었기에 이번에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워낙 편하게 신던 구두이고 얼마 전 새로 산 구두에 발이 아직 적응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던 참이라 수선을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퇴근길에 아파트 입구 구두 수선소에 들렀더니 마침 아저씨는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구두 수선되나요?"
"그럼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앞의 밑창이 벌어졌거든요. 붙일 수 있나요?"
구두를 꼼꼼히 살펴보시던 아저씨는
"참 알뜰하게도 신으셨네요. 그런데 이 구두는 앞부분이 유광 처리되어 있어서 본드만 칠해서는 금방 다시 떨어져요."
"그럼 이제 버려야 하나요?"
"수선하면 아직 새것인데 버리기는요. 앞부분을 실로 꿰매고 밑창을 다시 덧대면 되요."
"그렇게 수리하면 얼마인데요?"
"뒷굽도 갈 때가 되었으니 그것까지 갈아서 8,000원 주세요."
순간 난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8,000원의 가치가 있는지,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나은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졌다.
"좋은 구두인데 수선해서 신으세요. 버리기엔 아깝잖아요."
아저씨의 말씀에 수선하면 멀쩡해질 구두를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네, 그럼 잘 수선해 주세요."
마음을 정하고는 일어설 높이도 안 되는 작은 공간 안에 앉아서 아저씨가 구두를 수선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늦게 퇴근하니 시장하겠다면서 요구르트 하나를 건네주신 후 아저씨는 장갑도 끼지 않으시고 내 구두를 정성스럽게 수선하셨다.
아저씨의 손은 세월의 무게와 경력을 느끼게 할 만큼 굳은살이 박혀 투박했다.
그 투박한 손으로 힘주어 구두의 밑창을 꿰매다 구두 수선 바늘에 손을 찔렸다.
피가 나오고 곁에서 보고 있는 나는 당황했는데, 아저씨는 흔히 있는 일인 양 헝겊으로 손가락을 힘주어 잡아 지혈하신 후 상처 부위에 본드를 바르셨다.
순간 나는 아저씨가 다쳤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그 독한 공업용 본드를 다친 속살에 대면 많이 아플 텐데 저러다 덧나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아저씨는 다시 구두 수선에 여념이 없으셨다.
세심하고 구두 수선을 마친 아저씨는
"지금까지 신고 다니실 때보다 더 편할 거예요. 구두 밑창이 많이 닳아서 그동안 많이 걸으면 발바닥이 아팠을 텐데. 그리고 이제는 지하철역이나 사무실의 미끄러운 바닥을 걸어도 미끄러지지도 않을 거구요."
"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한테 구두 수선을 맡겨주신 게 고맙죠."

아저씨가 수선해 주신 구두를 신고 걷는데 카펫 위를 걷는 것처럼 발이 편했다.
구두약까지 칠해서 깨끗해진 구두는 앞으로 몇 년은 더 신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해 보였고, 순간적이지만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내게 '나 이렇게 멀쩡해' 하면서 으스대는 것 같았다.
내 구두가 이렇게 새 것처럼 멋지게 바뀐 것처럼 아저씨의 손도 덧나지 말고 잘 아물어야 할텐데.
모르긴 몰라도 나를 놀라게 했던 아저씨의 응급처치가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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